서건창(35·KIA)은 지난 26일 광주 롯데전에서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2008년 데뷔해 2012년부터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서건창이 선발, 교체 출전을 통틀어서도 처음으로 1루를 지켰다.
이날 서건창은 끝까지 1루수로 경기를 소화했다. 이범호 KIA 감독은 서건창의 1루 수비에 대해 “괜찮았다”고 평했다. 6회말에는 1사 만루에서 박승욱의 땅볼 타구를 달려나와 잡은 뒤 홈 승부를 하지 않고 1루로 송구, 타자주자만 잡아 선취점을 준 장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이범호 감독은 “그 부분에서 서건창이 베테랑인 거라고 생각한다. 2루수 김선빈과 계속 맞추고 있었다. 2점 차가 되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홈으로 송구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KIA는 올시즌 주전 1루수로 이우성을 낙점해놓고 있었다. 외야수인 이우성은 프로 데뷔 이후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1루수로 변신을 지난 시즌 뒤 마무리캠프부터 준비해왔다. KIA 1루는 김주찬의 은퇴 이후 무주공산이었다. 젊은 내야수들에게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올해 정말 열심히 훈련한 이우성이 주전을 차지하면서 기존 경쟁 그룹 선수들이 백업으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KIA는 추가로 서건창에게도 1루 수비 훈련을 시켰다. 서건창은 골든글러브 출신의 대표적인 2루수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서건창이 2루수 김선빈의 백업은 물론 1루까지 맡아주면서 KIA는 엔트리 구성에 상대적으로 여유를 얻었다. 현재 나성범이 부상으로 빠져 있는 KIA는 외야수 7명을 등록해놨다. 경기 후반 대타 투입 상황을 고려해 포수도 3명을 등록했다. 이범호 감독은 “외야 엔트리가 빡빡하기 때문에 서건창이 1루까지 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KIA가 이날 황대인을 선발 제외하고 서건창을 1루에 세운 것은 상대 선발 찰리 반즈와 상대전적 때문이다. 그러나 ‘1루수 서건창’을 자주 내놓지는 않을 계획이다. 1루수에 서건창이라는 옵션이 있고 실제 무리 없이 소화를 해냈다는 점만으로도, 성장이 더뎠던 기존 경쟁그룹에 자극이 될 수밖에 없다. 시즌을 끝까지 치르기 위해서는 황대인, 변우혁까지도 활약을 해줘야 한다. 이범호 감독이 ‘1루수 서건창’을 초반에 보여준 가장 큰 이유다.
1루수로 시즌을 준비했던 이우성은 개막후 외야로 가 있다. 나성범의 부상으로 생긴 외야 공백 한 자리를 메우기 위해, 시범경기에서 좋은 타격을 보여준 황대인과 함께 라인업에서 활용하기 위해 이우성이 일단 외야로 갔다.
그런데 이우성은 과거 뛰었던 좌익수가 아닌 우익수로 2경기 모두 출전했다. 1루수와 좌익수의 시야는 완전히 다르다. 겨우내 1루수로 변신을 위해 노력했고 성공적으로 적응해놓은 이우성이 혼란스럽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다. 나성범이 돌아오면 KIA는 원래 구상했던 라인업으로 돌아가고 이우성은 열심히 준비한 1루수로 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였던 이범호 감독은 “현역 때 마지막에 1루를 보는데 시야가 완전히 다르니 굉장히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이우성이 몇 달 간 1루수로 바꾸려고 그렇게 훈련을 했는데 좌익수로 보내서 또 혼란스럽게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KIA는 강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시즌 준비를 시작하려는 중에 불미스러운 일로 사령탑을 교체했고, 이범호 감독은 타격코치로서 출발했던 스프링캠프에서 사령탑으로 승격됐다. 갑자기 지휘봉을 잡았지만 시즌을 잘 준비했고 개막 직전 전력의 핵심 중 핵심인 나성범이 부상당하는 악재도 맞았지만 침착하게, 나성범이 돌아오게 될 이후도 계산하며 시즌을 길게 보고 출발하고 있다.